야간 귀갓길의 심리적 안전을 설계하다 ⎯ BIRDY, HCI KOREA 2026 CREATIVE AWARD 최우수상
골목길의 불안을 정서적 인터랙션으로 전환한 HIDE Lab 연구팀의 도전기
본교 디자인엔지니어링 전공 HIDE Lab(인간-로봇 상호작용 디자인공학연구실, 지도교수 박기철) 소속 이성빈(디자인엔지니어링 융합전공·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김정민·최성수(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스마트디자인엔지니어링), 홍채은·최지원(디자인컨버전스학부), 박시영(중앙대 산업디자인과·HIDE Lab 학부 연구원) 학우로 구성된 연구팀은 야간 귀갓길 보안용 빔 프로젝터 조명 'BIRDY'으로 HCI KOREA 2026 CREATIVE AWARD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HCI KOREA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분야의 국내 대표 학술대회다.
CREATIVE AWARD 분과는 피지컬 제품이나 디지털 UX 형태의 산출물을 논문과 함께 제출하는 학생부 경쟁으로, 심사 위원은 HCI·디자인·인간공학·심리학 분야의 교수들로 구성된다. 교수들이 직접 작품을 사용해 보고, 사람과 제품 사이에 어떤 인터랙션이 발생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며 평가한다. 이번 대회에는 30~40개 팀이 출품했으며, 대상 1건·최우수상 2건만이 수여됐다.
Q. 수상 소감을 먼저 들려주세요.
홍채은: 마감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어서 더 놀랐던 것 같아요. 학회장을 한 바퀴 돌아봤을 때 다른 팀들의 작품도 흥미롭고 잘 만들어진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중에 저희가 상을 탔다고 하니까 믿기 어렵기도 하고, 너무 기뻐서 팀원들에게 바로 알렸죠.
개인적으로는 이번 프로젝트가 로봇을 처음으로 제대로 다뤄본 경험이었어요. 연구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움직이는 기계와 이렇게 가까이 작업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로봇의 움직임으로 사람에게 심리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저희가 주고자 한 가치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는데, 그 결과물이 심사 위원과 관람객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 자체가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의미였습니다.
최성수: 연구실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커뮤니케이션이었어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같은 공간에서 매일 함께 작업하다 보니 디자이너 요구와 엔지니어링의 한계를 실시간으로 조율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100% 구동 가능한 프로토타입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BIRDY는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요?
주변 또래들이 골목 안쪽 주거지에 많이 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귀갓길이 주제가 됐습니다. 설문조사를 해보니 야간 골목길 환경에서 불안을 느끼는 비율이 꽤 높았고, 그 이유로는 유동 인구가 적다는 것과 CCTV 수가 부족하다는 점을 확인했어요. 기술적인 해결보다 심리적인 접근이 가능한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한 것이 BIRDY의 출발점입니다.
BIRDY는 셉티드(CPTED,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공법 중 '자연적 감시' 원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CCTV처럼 감시 장치로 존재하기보다, 빔 프로젝터가 가진 감성적 요소를 활용해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Q. '새'를 핵심 모티프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먼저 새는 예로부터 길의 안내자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전서구(통신에 이용하기 위해 훈련된 비둘기)처럼 먼 거리와 복잡한 길을 찾아낸다는 상징성이 '귀가 동반자'라는 콘셉트와 잘 맞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골목길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형태라는 점이 중요했어요. 만약 코뿔소나 얼룩말 같은 형태였다면 오히려 불안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새는 이미 골목에서 흔히 마주치는 친근한 존재거든요. 또 형태적으로도 표정이 강하지 않은 대신, 머리와 꼬리의 움직임이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Q. BIRDY가 제공하는 세 가지 기능, 감시·동반자·환대는 어떻게 구현되나요?
BIRDY는 카메라와 AI를 내장하고 있어요. 사람이 골목길에 들어오면 먼저 이를 인식하고 꼬리를 흔드는 모션으로 귀가자를 반겨줍니다. 이것이 '환대'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다음 사람이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오면 BIRDY가 발걸음을 따라 프로젝터 빔을 아래로 투사합니다. 5 자유도의 관절 구조 덕분에 사람의 이동 경로를 따라 빛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데, 이 과정에서 '같이 걷는 동반자'의 감각이 생깁니다. 동시에 움직이는 조명 자체가 공간이 관리되고 있다는 신호를 주면서 잠재적 위협 요소에 대한 억제의 기능도 수행합니다.
Q. 실물 제작과 모션 연동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모션 작업은 블렌더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1:1 스케일 모델링 파일 안에 모터 위치를 잡고, 조정해 새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다듬었어요. 실제 새 모션 캡처 데이터를 연구해서 그것을 블렌더로 구현하고, 다시 모터로 재현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완성된 버디에 모션을 입히고 나서도 엔지니어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조금씩 수정해 나갔어요.
이때 가장 큰 기술적 난관은 하중 문제였습니다. BIRDY의 본체가 축 끝단에 위치하다 보니 모터에 하중이 집중되는 구조인데, 3D 프린터 출력 사이즈 제한으로 인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연결 부위의 내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1차 프로토타입이 실제로 부러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이후 모터 위치를 몸체 쪽으로 이동시키는 방향으로 구조를 수정했는데, 그러면 모터가 외부로 노출되는 문제가 생겼어요. 축의 형태를 원기둥에서 다른 형태로 바꿔 모터 부위를 자연스럽게 가리는 방식으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합의점을 찾아서 해결해 나갔습니다.
Q. 다교 협업팀으로 진행된 만큼 팀 운영이 어떻게 이뤄졌나요?
큰 의견 충돌은 없었어요. 서로 다른 학교와 전공이라 프로세스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걸 충돌로 가져가기보다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연구원들의 개인 출품 작품 수도 많고 다른 산업 프로젝트도 병행하는 상황이었는데, 모션 시안을 빠르게 공유하고 디자인 외형도 신속하게 의사결정 하면서 정해진 일정보다 오히려 일찍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최지원: 저 같은 경우엔 블렌더를 거의 처음 써봤고, 모션을 실물 모터와 연동한다는 개념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그 과정을 배워나가는 게 재미있었고, 실물을 구동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몸으로 깨달은 계기가 됐습니다.
김정민: 엔지니어로서 시간 압박이 있다고 해서 디자인을 포기하고 구동만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면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가치가 사용자에게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모터가 노출되고 전선이 보이는 프로토타입이 되면 결국 작품이 전달하려는 감성이 무너져요.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디자인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소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Q. 홍천 현장에서 발표 경험은 어땠나요?
학회 발표가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였어요.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부스에 오셔서 콘셉트 설명해 드리고 직접 시연을 해드렸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귀엽다', '진짜 움직인다', '생동감 있어 보인다'라는 피드백을 많이 주셨고, 저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도 받으면서 오히려 발표 도중에 아이디어가 더 발전하는 경험을 했어요.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시연 중에 BIRDY가 과부하로 넘어지는 사고가 났어요. 관람객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러웠는데, 엔지니어 팀원들이 즉각 달려와 빠르게 수습해서 다시 작동시켰어요. 그 순간이 오히려 '우리가 함께 이걸 만들었구나'를 실감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Q. 박기철 지도 교수님의 지도가 이번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교수님이 항상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저희는 디자인 연구실이지만, 심미적인 것만 쫓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제품이 예쁠 수는 있어도, 그 예쁨이 전부가 아니라 사용자가 그 제품으로부터 어떤 감정을 받아들이는지가 진짜라는 말씀이에요. 방향성을 잡을 때마다 이 제품이 사람과 어떻게 인터랙션 되는지를 먼저 염두에 두라고 언질을 주셨기 때문에 연구와 작품이 서로 단단히 연결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교수님이 다른 교수들의 반응을 전해주셨는데, 실제로 구동된다는 점과 실생활에서 진짜 쓰일 것 같다는 점이 심사 위원들에게 가장 크게 공감됐다고 하더라고요. 겉모습뿐 아니라 골목길에서 움직이면서 사람의 마음을 안도시킨다는 장면이 설득력 있게 다가갔다는 얘기였습니다.
Q. BIRDY 이후 연구는 어떻게 이어지나요?
지금 후속 과제를 진행 중입니다. 실제 공간에서 로봇 기반 빔 프로젝터·조명이 수행할 수 있는 UX를 연구하고, 그것을 제품으로 구현한 뒤 사용자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다음 단계입니다. 연구의 검증이 잘 된다면, 선행 제품 출시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이번에 학부생들이 만들어준 모션 가이드와 디자인 자산이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Q. 학회 도전을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박시영: 로봇이라는 분야가 전혀 낯설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장벽이 높지 않았어요. 학회에 오는 분들은 교수님부터 현직 실무자까지 정말 다양하거든요. 그분들한테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과 인사이트를 받는 경험이 굉장히 귀합니다. 내 인사이트를 넓히고 싶다면 꼭 한 번 도전해 보세요.
홍채은: 아이디어를 실물로 만들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경험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해요. 연구실의 도움이 있었지만, 자신이 가진 창의적인 발상을 세상에 꺼내볼 수 있는 무대로서 이런 학회 출품을 적극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최지원: 다른 전공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통하고 맞춰가는 역량이 자연스럽게 길러졌어요. HIDE Lab에서 경험하며 로봇 개발에 대한 고정관념도 많이 깨졌습니다.
BIRDY 팀은 지금 골목을 넘어 더 넓은 공간으로 이 연구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전봇대 위에서 고개를 돌리며 귀가자를 반기던 빔 프로젝터가, 우리가 살고 움직이는 모든 공간 안에서 사람과 더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들의 손으로 만든 모션 하나가 기업의 과제가 되고, 언젠가 실제 제품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이 프로젝트가 남긴 가장 단단한 질문이다.
온라인커뮤니케이션실 황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