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서 시작된 비평, 김윤진 비평가 인터뷰
SeMA-하나 평론상 수상을 계기로 나눈 생각과 작업 이야기
서울시립미술관은 여섯 번째 2025 SeMA-하나 평론상 수상자로 비평가 김윤진을 선정했다. 하나금융그룹 후원으로 2015년 제정된 이 상은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이끌 차세대 평론가를 발굴·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상이다. 수상자 김윤진은 본교 일반대학원 예술학 전공 졸업생으로, 미술·영화·만화 등 시각예술 전반을 가로지르는 비평을 꾸준히 써왔다. 작품과 관객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긴장, 전시 제도와 감상의 태도에 주목하는 시선이 특징이다.
사진: 이행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수상작 「관종의 시대와 자기 노출 전략의 미학: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을 중심으로」는 2021년 부산현대미술관 전시를 ‘관종’과 ‘외설’이라는 키워드로 비평한 글로, 심사위원단은 이를 “도발적 전시에 대한 도발적 비평”이라 평가했다. 수상작 전문은 세마 코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김윤진 평론가와 비평의 현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에서는 수상작의 문제의식부터 비평을 창작으로 바라보는 태도, 현재의 관심사와 앞으로의 연구 계획, 그리고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까지 폭넓은 이야기가 오갔다.
Q. 이번 수상작은 특정 전시를 다루고 있지만, 단순한 전시 리뷰라기보다는 평론가님의 문제의식이 먼저 보였어요.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이 글은 특정 전시 하나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제가 몇 년간 계속 관심을 가져왔던 ‘전시라는 형식’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습니다. 몇 년 동안 일정기간 '지속되는' 것으로서 전시의 형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과거에는 공간성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전시에 대한 논의가 최근 들어 시간성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점을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초부터 전시의 기원과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있었는데요, 우리가 지금 보는 전시는 근대에 시작된 것이고, 그것이 수집과 소유의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21년에 열렸던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의 사례에 주목하게 되었고, 전시에서 관찰되는 독특한 태도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Q. 심사평에서도 ‘비평의 위기’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했는데요. 이런 담론 속에서도 계속 비평을 쓰고 계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비평의 위기라는 진단이 그 자체로 새롭진 않지만, 이번 평론상 심사평에서 그것이 특히 언급된 이유는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있었던 검열 사건 때문일 것입니다. 제2회 SeMA-하나평론상의 수상자인 남웅 평론가님의 비평 원고가 계엄 사태를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서울시립미술관에 의해 게재 불가 통보를 받게 된 사건인데요. 평론상 이전 수상자를 비롯한 여러 예술인들이 연대 서명에 동참하며 목소리를 한데 모으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비평을 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라면, 저에게 비평은 제가 가장 하고 싶어하고 또 편안하다고 느끼는 일입니다. 시상식 소감에서 말씀드리기도 했는데요, 제게 비평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비평을 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숨 쉬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에 비평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을 해야 한다’기보다는, 이 방식이 저에게 허용된 가장 자유로운 표현 방식 중의 하나라고 느낍니다. 제 본질적인 욕망과 맞닿아 있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놓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비평은 흔히 작품을 ‘설명’하거나 ‘보조’하는 글로 인식되기도 하는데요. 글 역시 하나의 창작이라는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저는 분명히 비평도 창작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조형 언어로 물질적·비물질적 결과물을 만든다면, 비평은 문자 언어를 통해 보이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감각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가도 자신의 관심사를 꾸준히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의뢰받은 대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서 그치기보다는, 스스로 붙잡고 있는 질문과 연구 주제를 기반으로 글을 쓸 때에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또한, 현실적으로 비평을 의뢰받아 작품을 접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에 앞서 적극적으로 작품을(또는 작가를) 찾아다니는 일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많이 보고, 오래 숙고하는 과정을 거치며 기반을 다지고 있어야 비로소 작품과 만난 순간에 좋은 글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나 구상 중인 방향이 궁금합니다.
A.
앞으로 2년 동안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게 될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개인 연구를 지원받아 최종적으로는 출판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전시의 시간성에 대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인데요. 20세기 어느 시점부터 시간의 작동 방식이 변화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변화한 시간성이 미술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편으로는 시간-기반 예술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전시의 개념을 재고해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미술 전시에서 관찰되는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해요. 예를 들면, 전시에서 스크린의 도입과 어둠의 활용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전시의 문법과 작가들의 매체 활용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펴보려고 하고요. 나아가 관객이 작품을 만나는 방식이나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파악해보려 합니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주제인 만큼,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홍익대학교 학생분들도 많이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예술을 공부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창작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
무엇보다 많이 보고, 많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표현하는 것에 앞서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느끼는 것에도 훈련이 필요한데요. 미술이든 미술이 아니든, 일단 대상과 자신의 접점을 발견해서 파고 들어가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단, 머릿속에서만 질문하지 않고, 실제로 질문을 (글로) 써보고 또 답해보면서 생각을 밀고 나가 보는데요. 이렇게 질문이 쌓이다 보면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해요. 그게 결국 자신만의 관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을 공부하는 분들께 특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원문을 직접 찾아보라는 것이에요. 석사 논문을 지도해주셨던 정연심 교수님께서 강조하셨던 바이기도 한데요, 덕분에 대학원 시절에 관심사를 상당부분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챗GPT가 있는 요즘에는 소모적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직접 찾아가며 공부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외 도서뿐 아니라 국내 도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인용된 문장과 원문의 강조점이 미묘하게 다른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원문을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련된 논의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축적된 지식이 여러분의 논리를 탄탄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과 함께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비평가의 사유와 작업 과정, 그리고 비평이라는 행위가 어떤 질문에서 출발해 어떤 태도로 이어지는지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특히 비평은 물론, 어떤 형태의 창작이든 표현에 앞서 스스로 충분히 느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인터뷰이의 말은 비평을 꿈꾸는 학우들뿐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창작을 이어가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공감과 울림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터뷰가 학우들의 작업과 진로를 고민하는 데 작은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며, 동시에 본교를 졸업한 자랑스러운 동문인 김윤진 비평가에게도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온라인커뮤니케이션실 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