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이후 1975-1995》, 본교 박물관 기획전 개막
비평의 언어로 읽는 한국 현대미술, 본교 박물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자리
본교 박물관은 오는 8월 18일부터 2026년 1월 9일까지 기획전 《백색 이후 1975-1995》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75년 홍대신문에 게재된 미술비평가 이일(1932-1997)의 글 「백색은 생각한다」 발표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되었으며, 한국 현대미술사 속 단색화와 그 이후의 흐름을 비평문과 작품을 통해 재조명한다. 오프닝 행사는 지난 8월 29일 오후 3시, 본교 문헌관 3층 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참여작가인 박석원, 서승원, 윤미란, 주태석, 진옥선, 최명영을 비롯해 비평가 이일의 유족들이 참석해 전시의 의미를 더했으며, 박상주 총장과 이면영 이사장을 비롯한 본교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해 자긍심을 나누었다.
전시는 1975년 도쿄화랑에서 열린 《흰색: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 전시와 그 도록에 실린 「백색은 생각한다」를 출발점으로 한다. 이어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일이 커미셔너로 참여해 곽훈, 김인겸, 전수천, 윤형근을 선정한 시기를 종착점으로 삼아, 약 30년에 걸친 이일의 비평과 함께한 작가들의 작업을 아우른다. 참여 작가로는 김강용, 박서보, 서승원, 윤형근, 진옥선, 최기원, 하종현 등 17명이 포함되었으며, 모두 본교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이는 미술사에서 비평가의 글과 작품을 나란히 조명하는 드문 사례로, ‘비평이 미술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아카이브 자료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유족들의 협조로 대여된 사진과 전시 도록, 이일이 기고했던 홍대신문 스크랩, 그리고 동경화랑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공받은 전시 전경 이미지 등이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관람객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기록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또한 전시장 외부에서는 비평가 이일을 회고하는 영상이 상영되며, 전시 도록에는 작품 이미지와 더불어 그의 글이 발췌·수록되어 있어 관람 이후에도 작품과 비평을 나란히 읽으며 전시 경험을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가 본교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시에 자문을 준 본교 예술학과 정연심 교수는 이번 전시가 이일의 글과 본교 박물관 소장품을 함께 조망함으로써 소장품의 예술사적 가치를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또한 훌륭한 걸작이 다수 포진한 본교 컬렉션이 앞으로 더욱 활발히 공개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보존을 넘어, 소장품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사 속에서 비평가의 사유와 실천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되짚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이는 본교 박물관이 학문적 연구와 교육의 장을 넘어 문화 담론을 생산하는 기관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작가와 작품에만 머무르지 않고 비평가의 글을 전시의 중심에 두었다는 점이다. 작품과 비평, 그리고 담론이 서로 맞물리며 전시의 맥락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관람객은 한국 현대미술사 속에서 비평이 담당했던 역할과 영향력을 다시금 체감할 수 있다. 큐레이터들은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오늘의 시점에서 비평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자리”라며,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예술을 보고, 글을 통해 그 의미를 다시 사유하면서 비평의 힘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일 (1960) ㅣ 이유진 제공)
《백색 이후 1975-1995》는 1세대 비평가이자 본교 교수로 재직했던 이일의 글에서 출발해,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과 국제적 교류, 그리고 비평의 창조적 힘을 다시금 환기하는 특별한 전시다. 이번 기획전은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향한 비평적 담론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앞으로도 본교 박물관이 이러한 도전적인 기획 전시를 통해 학문과 예술, 그리고 사회를 잇는 창의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전시작품
김강용, <현실 + 장(Reality + place) 82-55>, 1982, 혼합기법, 95×122cm
김선, <감각적 자화상>, 1996, 아크릴, 72×100cm
김인겸, <잘라진 고리>, 1978-1979(추정), 청동, 29×43×20cm
김정숙, <사랑의 로켓트>, 1973, 동, 90×30×20cm
박서보, <묘법 No. 961028>, 1996, 한지에 혼합재료, 80.4×100cm
박석원, <상력 1-5>, 1974, 나무, 21×54×21cm
박영하, <내일의 너(Thou to be seen tomorrow)>, 2006, 혼합재료, 81×81cm
서승원, <동시성74-9>, 1974, 유화, 130×96.7cm
송번수, <작품 75>, 1975, 지본판화, 100×70cm
송번수, <광화>, 1978, 사직/합성섬유, 103.5×101.5cm
윤미란, <TRANQUILITY AND ACCORD>, 1984, 판화, 45×45cm
윤미란, <평온과 조화>, 1986, 판화, 49.5×48.5cm
윤형근, <다와 청>, 1996, 유화, 92×72.2cm
이명미, <컵>, 1992, 아크릴, 72.7×90.9cm
주태석, <RAIL-ROAD>, 1979, 유화, 80×130.5cm
지석철, <반작용 78-10>, 1978, 종이에 색연필, 85×62cm
진옥선, <Answer-78-J>, 1978, 유화, 50.5×64.5cm
최기원, <탄생>, 1996, 청동, 54×43×19cm
최명영, <변질>, 1973, 유화, 93x93cm
하종현, <접합 98-30>, 1998, 유화, 120×180cm
허황, <가변의식>, 1993, 유화, 72.7×91cm
온라인커뮤니케이션실 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