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preet Sareen 초청, 기술·생명의 경계에서 그리는 미래
기술, 자연,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적 디자인의 길
지난 8월 7일 목요일, 본교 서울캠퍼스 제1공학관 K101호에서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교수인 Harpreet Sareen(하프릿 사린)이 방한했다. Sareen 교수는 Material Behaviors이라는 주제로 살아있는 유기체와 유기 물질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과정과 물질의 특성, 비인간 존재의 행동이 인터랙션 디자인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였다.
이번 강연은 본교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최경윤 교수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최경윤 교수는 개회 인사에서 “디자인과 공학의 융합이 확장되는 지금, Harpreet Sareen 교수의 작업은 기술과 자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대에 오른 Harpreet Sareen 교수는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오랫동안 인류가 지녀온 ‘인간 중심’ 기술관과 인공 합성 소재 의존적 디자인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기술이 보다 ‘생태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오늘날의 디자인은 인간의 행동뿐만 아니라 식물, 동물, 그리고 살아있는 유기물의 행동까지 포괄해야 합니다.” 그는 이 말을 서두로, 자신의 독창적 개념인 ‘Convergent design(컨버전트 디자인)’과 대표 프로젝트 ‘Cyborg botany(사이보그 보타니)’를 소개했다.
‘Cyborg botany’는 단순한 식물 장식이 아니라, 식물이 지닌 생체 전기·화학 신호를 인간과 기계 인터페이스로 활용하는 실험적 시도이다. 그는 청중에게 “공장에서 찍어내는 실리콘 칩 대신,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하고 치유하며 성장하는 식물을 하나의 전자 장치로 상상해 보라”고 제안했다.
이어서 Harpreet Sareen 교수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Elowan(엘로완)’은 화초에 부착된 전극이 식물의 ‘빛을 향한 욕구’를 감지해 로봇 바퀴를 움직이는 프로젝트이다. 청중은 식물이 스스로 빛을 찾아 움직이는 장면에 놀라움과 웃음을 터뜨렸다. 이는 단순한 자동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행위 주체성(agency)’을 부여할 수 있다는 철학적 가능성을 드러냈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실험도 소개하였다. SXSW 혁신상을 수상한 ‘Argus(아르거스)’는 식물의 잎 세포간극에 DNA 기반 나노센서를 주입해, 납(Pb)과 같은 중금속을 감지하면 어둠 속에서 빛을 내도록 했다. 유지보수가 필요 없는 ‘살아있는 센서’로서, 환경 재난을 조기에 포착하는 새로운 감시 체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구글 크리에이티브랩과의 협업작 ‘Project Oasis’에서는 기술이 자연을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 자연이 곧 디스플레이가 되는 미래를 제시했다. 청중이 음성 명령을 내리면, 밀폐된 테라리움 속에서 해당 도시의 실제 날씨처럼 비가 내리고 안개가 피어 오른다.
나아가 Harpreet Sareen 교수는 기술과 자연,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를 위해 주요한 가치를 청중들에게 제시하였다.
첫째는, 지속가능성이다. ‘살아있는 하드웨어(living hardware)’는 기술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근본적으로 재고한다. 기존의 전자 기기는 수명이 다하면 전자 폐기물이 되지만, 식물을 기반으로 한 장치는 스스로를 재생하고, 성장하며, 에너지를 생성한다.
이는 결국 순환 경제 모델을 촉진한다. Elowan과 같은 프로젝트는 식물이 지닌 생체 전기 신호를 이용해 로봇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기존의 실리콘 칩에 의존하지 않는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기술 발전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능력을 활용하여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둘째로, 사용자 경험의 확장이다. 기술과 자연의 융합은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 방식도 변화시킨다. Harpreet Sareen 교수는 스크린이나 버튼과 같은 전통적 인터페이스를 넘어, 식물의 향기, 색 변화, 전류 변화 등을 이용한 다감각 인터페이스를 제안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Project Oasis는 사용자의 음성 명령에 따라 식물 테라리움 내부의 날씨를 변화시켜, 기술이 자연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 자연 자체가 곧 디스플레이가 되는 미래를 그린다. 이는 인간이 시각과 청각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상호작용에서 벗어나 촉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기술과 교감하게 함으로써 사용자 경험을 풍부하게 확장한다.
셋째로, 윤리적·철학적 확장이다. Harpreet Sareen 교수의 작업은 기술의 ‘사용자’를 인간에게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중요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Sareen 교수는 식물, 동물, 심지어 무기물까지 기술의 ‘사용자’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lowan 프로젝트에서 식물은 단순히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찾아 움직이는 ‘행위 주체(agency)’가 된다. 이는 기술이 단순히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생명 및 물질과 공존하고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반영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술 윤리의 범위를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로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학생들은 “상용화를 위해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 “윤리적 우려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지” 등을 질문했다. 사린 교수는 “기술적 장벽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수용성과 문화적 이해”라며, “연구자는 기술만이 아니라 그 기술이 놓일 ‘생태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답했다. 행사는 약 2시간 동안 이어졌고, 강연이 끝난 후에도 청중 일부는 무대 앞으로 나와 직접 질문을 이어갔다. 많은 이들이 “기술이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넘어 “기술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품고 강의실을 나섰다.
이번 강연을 통해 Harpreet Sareen 교수는 미래 기술의 발전이 환경과 대립하는 대신,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온라인커뮤니케이션실 안도현 기자
온라인커뮤니케이션실 장예찬 사진 기자
작품 사진: (c) Harpreet Sa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