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과 소모임 데클, 청와대에서 판화 교육 개최
많은 시민들에게 판화 교육의 기회 제공하여 화제
본교 미술대학 판화과 소모임 데클(DECKLE)이 제55주년 지구의 날(4월 22일) 기념 청와대재단 교육주간을 통해 청와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판화 교육을 실시했다. 본교 소모임이 청와대에서 교육을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evelopment, Education, Connect, Keys, through Linkage, and Exhibition’을 핵심 비전으로 내세우는 데클(DECKLE)은 미술대학 판화과 학생들로 구성된 전시 기획 콜렉티브다. 데클이라는 이름은 손으로 뜬 종이의 자연스럽고 다듬어지지 않은 가장자리인 ‘deckle edge’에서 유래됐다. 완벽히 정제되지 않고 거칠지만, 그 안에 진실되고 본질적인 예술적 감각을 품고 있다는 점이 데클의 작업 방향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의미다.
2020년 처음 조직된 데클은 전시를 통해 삶의 모습에 새로운 시각을 더하고,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표현 방식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구성됐다. 이러한 목표에 발맞춰 데클이 기획하거나 진행하는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은 전통 판화뿐만 아니라 판화와 미디어 아트, 설치, 디지털 매체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지난 1월 데클은 서초문화재단 서리풀청년아트갤러리에서 <넘어지고, 넘어지며, 넘어지는> 전시를 진행했다. 자꾸만 넘어져도 한 발, 한 발 상실을 안고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해당 전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 출신 퍼포머와 함께하는 무용 미술 융합 프로젝트,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데클의 끝없는 도전과 예술적 시도는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다. 청와대에서 판화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던 배경을 묻는 질문에 데클 교육팀장 박혜림 학우(판화과 21)는 “서리풀청년아트갤러리에서 감사하게도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판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는데, 참가자 중 한 분이 청와대재단 문화사업팀에서 근무하시던 분이었다”고 전했다. 박 학우는 당시의 상황을 “직접 판화 체험을 하시고 청와대재단에서 진행하는 ‘2025 교육주간’에 포함하고 싶으시다며 연락처를 받아 가셨다. 추후에 연락을 주시면서 2월 말쯤 컨택이 되었다”며 회상했다.
이번 교육 프로그램에 강의 진행자로 참여한 이정윤 학우(판화과 21)는 판화의 정체성이 분명한 교육 프로그램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냈다고 강조했다. 이 학우는 “일반적인 전시 연계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이 작가의 작품을 모작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이다. 그러나 데클은 판화만의 분명한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성수에 있는 판화 공방에서 직접 프레스기를 대여해 교육을 진행하는 등, 단순한 모작이 아니라 판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 것 같다”며 청와대 판화 교육 진행의 이유를 전했다.
데클만의 확실한 정체성도 돋보였다. 이 학우는 “다양한 기관과 컨택하고, 여러 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 데클이 단순히 ‘미술대학 전시 기획 콜렉티브’였다면 이렇게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라고 밝히며 “데클은 판화라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고, 단순히 전시를 넘어 판화에 대한 우리의 애정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2025 교육주간’에서는 제55주년 지구의 날(4월 22일)을 맞아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자연’을 주제로 색다른 체험의 장을 펼쳐 관람객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소중함과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교육주간 청와대에서는 청와대 공간과 풍경을 주제로 진행하는 ‘제1회 청와대 어린이 사생대회: 청와대 숲속 피크닉’부터 보물찾기, 요가 체험, 병뚜껑을 이용한 재활용 블록 놀이 등도 마련됐다.
데클 역시 이러한 주제 의식과 판화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데클이 내린 결론은 ‘시아노타입(청사진 기법)’이었다. 박 학우는 “판화와 자연을 어떤 식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하다가 자외선을 이용할 수 있는 판화 기법인 시아노타입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시아노타입은 철의 산화 반응을 이용한 인화 기법으로 구연산, 철, 암모늄, 적혈염 등을 섞어 만든 ‘감광액(Sensitizer)’을 종이나 천에 골고루 바르고 건조한 뒤 자외선에 노출시켜 시아노타입 특유의 선명한 푸른색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이 학우는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은 수용성의 성질이 유지되지만, 빛이 닿는 부분은 앙금 반응으로 인해 푸른색으로 변하며 종이나 천에 염색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라며 시아노타입의 원리를 설명했다. 종이나 천에 물체를 올려 햇볕을 쬐면 올려둔 부분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나머지 부분은 앙금 반응에 의해 푸른색으로 변하며 이미지를 기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아노타입 기법은 1842년 영국의 천문학자 존 허셜에 의해 개발됐다. 시아노타입은 카메라나 렌즈 등 광학 장비 없이 감광액과 빛만으로 사진을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술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건축 도면, 식물도감 등을 제작할 때 주로 활용되기도 했다. 직접 그리거나 말려서 보관하는 방식보다 빠르고 훼손에 덜 취약하다는 장점도 한몫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법론을 의미하는 ‘청사진(Blue Print)’이라는 용어 역시 여기에서 유래됐다.
목판화, 동판화 등 대표적인 판화 기법 대신 시아노타입을 선택한 이유도 돋보였다. 박 학우는 신입생 시절 시아노타입을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프레스기를 사용하지 않아 어린이들도 쉽고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자외선(햇빛)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자연이라는 키워드와 맞겠다 싶어 선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학우 역시 “(프레스기를 사용하면) 비전공자들은 톱니바퀴에 옷이나 머리카락, 손가락 등이 끼어 다치는 경우도 많다”고 우려를 표하며 "시아노타입 용액은 프레스기도 사용하지 않고, 인체에 무해해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데클 회장 천지율 학우(판화 22)는 “청와대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푸른색과 시아노타입의 푸른색이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선택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데클의 청와대 판화 교육은 다양한 재료를 준비하고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시민들은 말린 꽃, 조약돌, 유리컵, 직접 그린 그림 등을 배치하며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상이 끝난 시민들은 스펀지로 시아노타입 용액을 고르게 발랐다.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불을 끄는 과정도 잊지 않았다. 시아노타입 용액을 모두 바른 이들은 드라이기를 이용해 완전히 건조를 마친 뒤, 청와대 녹지원으로 나가 미리 구상한 대로 재료를 배치하고 고정해 작품이 자외선에 노출될 수 있도록 했다.
푸른색으로 변한 작품들은 교육실에서 꼼꼼히 세척되고, 드라이기를 통해 다시 한번 건조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완전히 건조된 작품들은 갱지를 통해 안전히 포장되어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은 조별로 배치된 데클 부원들의 도움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진행됐다.
이 학우는 이어 “시아노타입은 간편하면서도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법”이라는 점에서 판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데클의 목적과도 일치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기법이 존재하는 판화의 특성상 일부 기법은 특정한 비품이나 복잡한 공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고 간단하게 접할 수 있는 기법도 많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는 취지다.
천 학우는 “사람들이 판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줄 알았다. 그러나 교육을 진행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낯설고, 낯설기 때문에 더 호기심을 많이 느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번 교육 기획과 진행을 통해 “판화는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알리는 것에만 집중해야 하는 분야가 아니라, 그 이상의 잠재성을 가진 무궁무진한 장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것이 천 학우의 설명이다.
박 학우 역시 “지금까지의 판화 교육은 대부분 학교 내에서만 진행했는데,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해서 판화를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뿌듯했다”고 밝혔다. 박 학우는 “커리큘럼 조정, 예산 관리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팀원들과 함께 소통하고, 조율하고, 협력하는 힘을 많이 느낀 것 같다”며 “그게 어찌 보면 판화를 하는 과정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혼자 진행하기 어려워 누군가의 도움이나 보조가 필요한 판화의 특성과 판화 교육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이 맞닿아 있다는 의미다.
이 학우는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결과물을 나누는 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이 학우는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판화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쉽구나’라는 공통된 의견을 내주시니 우리로서는 뿌듯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데클은 대중이 예술에 쉽게 접근하고,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가 판화라고 강조했다. 박 학우는 “판화는 타 분야보다 명확히 정해진 기술과 기법이 존재하고, 함께 따라야 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처음 배우기도 쉽고, 교육하기에도 적절한 분야라는 취지다.
그럼에도 판화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판화과가 존재하는 대학은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두 곳뿐이다. 이 학우는 “판화 교육은 단순히 판화의 명맥이 이어진다는 의미에서도 필요하지만, 판화와 관련된 생태계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천 학우 역시 “판화는 프레스기 등 고가의 장비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사용법 등을 직접 가르쳐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처럼 조금씩이라도 명맥을 이어가야 한국의 예술인들이 판화라는 분야를 잊지 않고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데클은 새로운 시도 또한 멈추지 않는다. 천 학우는 현재 준비 중인 프로그램이 있느냐는 질문에 “서울 인근에 낙후된 지역이 생겨나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이나 추억들이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일대를 탐문하며 흔적들을 모으고, 아카이빙하고, 하나의 입체적인 지도로 만들어 배포하는 방식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판화의 특징 중 하나인 복제성과 주제를 융합하겠다는 취지다.
내부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도 이어진다. 올해 새로 만들어진 커넥션 팀에 몸담은 이 학우는 “단순히 대학교 소모임 전시처럼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지인끼리만 공유하는 전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외부와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찾아가는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판화 공방 등을 운영하는 졸업생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결국 데클은 전시 기획과 판화 교육, 스스로의 성장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며 판화 분야의 명맥 자체를 이어가는 셈이다. 판화의 아름다움을 이어가는 데클의 다음 행보에 많은 학우들의 귀추가 주목된다.
온라인커뮤니케이션실 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