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제안하는 환경적 비전, 청계천 판잣촌에서 펼쳐지는 뉴 아키미스트 전시
금속조형디자인과 소재 디자인 랩과 서울시설공단의 협업으로 눈길
본교 미술대학 금속조형디자인과 서정화 교수가 운영하는 소재 디자인 랩과 서울시설공단이 협업하는 <뉴 아키미스트(New Alchemist)> 전시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소재 디자인 랩(material design lab)은 지속가능한 소재의 디자인을 통해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작가들의 모임이다.
소재 디자인 랩을 운영하는 서정화 교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점점 더 많은 환경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소비와 생산, 나아가 생활 전반에 걸쳐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와 이를 응용한 작품을 통해 디자인이 제안할 수 있는 환경적 비전을 고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소재 디자인 랩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금속조형디자인과 이시욱 학우는 “이전부터 국내외 디자이너들의 친환경 소재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아, 직접 친환경 소재를 연구하여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소재 디자인 랩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본교 금속조형디자인과 학부생 및 산업미술대학원 금속·주얼리브랜드디자인전공 대학원생 7명이 제작한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는 이번 <뉴 아키미스트(New Alchemist)> 전시는 소재 디자인 랩의 비전을 그대로 담아냈다. ‘새로운 연금술사’라는 의미의 이번 전시는 일상생활 및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농수산업 부산물 등 다양한 재료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친환경 소재의 디자인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환경적 책임에 대한 근본적이고 창의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지금, 사물의 제작과 유통 전반에 걸쳐 있는 환경 문제를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고찰한다.
7인의 소재 디자인 랩 작가들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소재에 손을 내민다. 그들은 폐교과서나 플라스틱 병뚜껑처럼 가치를 잃어버린 채 일상에서 버려지는 자원, 혹은 해조류 부산물이나 달걀 껍데기처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자원에 주목한다. 소재 디자인 랩 작가들의 손에서 달걀 껍데기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폐교과서는 일상 오브제로 재탄생한다.
왕겨와 우뭇가사리를 활용하여 왕겨가 생산되는 지역에 필요한 가구나 물건을 제작한 이시욱 학우는 소재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로 “한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인지”와 “자연 분해가 가능한지”를 제시했다. 자원의 이동 거리를 줄여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사용 후에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소재를 찾았다는 것이 이 학우의 설명이다. 왕겨는 쌀의 가공 과정에서 벗겨진 겉껍질로, 매년 80만 톤 가량이 발생한다.
또한 이 학우는 왕겨를 조합하기 위해 우뭇가사리를 접착제로 활용했는데, 이 역시 제품이 손상되었을 때 수리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우뭇가사리는 바닷속에서 자라는 해조류로, 한천이라고도 불린다. 이 학우는 왕겨를 분쇄하여 우뭇가사리로 접착시킨 해당 소재를 ‘Husk’로 명명했다.
전시에는 작품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와 작가의 창의적인 해결 방안도 담겼다. 이 학우는 겨울철 왕겨와 우뭇가사리를 물로 혼합한 뒤 건조하는 과정에서 수축이나 뒤틀림이 발생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시욱 학우는 왕겨의 특성을 적극 활용했다. 왕겨는 물건을 담거나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단단하지만,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어 갈아내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이 학우는 작품을 필요한 크기보다 약 10% 크게 제작한 후, 건조 과정에서 발생한 변형을 잘라내고 갈아내는 방식으로 균일한 크기를 갖출 수 있었다. 지속가능한 소재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여 문제 해결에 활용한 모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시 장소도 이목을 끌었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설공단과의 협업으로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에서 열린다.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은 2008년 조성되어 1960~70년대 생활상 체험 공간으로 운영되었으나, 2022년부터는 외관을 유지하며 추억을 보존하는 동시에 자연·생태 및 지속가능성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현재는 자연·생태 관련 일러스트 작품 및 영상·디지털 콘텐츠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0월 본교 미술대학 금속조형디자인과 학부 및 대학원생 12명으로 구성된 생태 프로젝트 그룹 ‘공생共生’은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에서 사람과 다른 유기체들의 지속가능한 공생관계를 모색하는 기획전시 <공생모색>을 진행한 바가 있다.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인 청계천 옆 판잣집에서 펼쳐지는 미래를 향한 회복과 지속의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이 학우 역시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은 청계천의 역사와 자연, 지속가능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전시를 진행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라고 판단했다”고 전시 장소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이 학우는 또한 해당 장소가 “일부러 전시를 보러 오는 방문객들뿐만 아니라 청계천을 거닐다가 우연히 방문하는 관람객들도 많아, 친환경 소재에 대한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서 교수는 현 시점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등 환경적 위기에 따라 우리 삶의 방식이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속가능한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지속가능한’이라는 키워드를 다시금 강조했다. 서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자원을 활용하여 사물의 유용성을 창작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지속가능한 소재의 사용 방식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한 도덕적 책무”라며 많은 디자이너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 학우 역시 디자인 측면에서의 환경적 책임은 “단순히 지속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제품의 전 과정, 즉 생산 - 소비 -폐기 전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품의 디자인 과정에서 사용자의 편의성이나 미적 요소를 고려하는 것을 넘어 해당 제품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소비되고, 최종적으로는 어떤 형태로 사라질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끝으로 이 학우는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재료를 탐색하고, 기존 소비 방식을 다시 바라보며, 사용자가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며 강조하기도 했다.
<뉴 아키미스트(New Alchemist)>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해당 전시는 5월 9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온라인커뮤니케이션실 김태섭 기자
온라인커뮤니케이션실 장예찬 사진기자